마음에 담는 글

아들의 지갑

삼다7 2009. 1. 29. 16:15

[장명수 칼럼] 아들의 지갑


요즘 중노년의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이런 '재치문답'이 오간다.
아들을 장가보내면 남이 되고 만다는 허무함을 표현한 유머 시리즈다.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이런 문답도 있다.

"잘 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장모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


하나 더 있다.

"아들은?" "큰 도둑"

"며느리는?" "좀도둑"

"딸은?" "예쁜 도둑"


● 어머니들의 재치문답 시리즈

 

어머니들은 이런 우스개를 하면서 깔깔 웃는다.
그리고 자신이 당했던 섭섭한 일들은 덮어둔 채 주변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딸은 뭐 다른 줄 아세요? 직접 부모를 안 모시니까 덜 부딪치는 거지, 못된 딸들도 많아요.
우리 친척 중 한 분은 딸에게 재산을 줬다가 재판까지 해서 되찾았다니까요.
 효성이 극진하던 딸과 사위가 돈을 받은 후 차츰 달라져서 불효막심해졌다는 거예요.
 배신감이 얼마나 심했으면 소송을 했겠어요."

 

"자식에게 재산을 미리 주면 안된다는 것이 노인의 수칙 1조인데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재산을 미리 주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나 자식을 위해서나 좋은 일이 아니예요.
자식들은 제가 번 돈으로 사는 게 원칙이고, 부모 입장에서는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노년에 무슨 병에 걸려 오래 앓을지 모르는데, 집 한 채라도 지니고 있어야 안심하죠.


 치료비, 생활비 달라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다가는 섭섭한 일 안당할 수가 없죠."

"제 친구 부부는 아들의 연봉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기쁘면서도 섭섭하더래요.
 그래서 명절에 만났을 때 '너 연봉이 대단하다며?' 하고 물었대요.
아들 며느리는 아무 대답이 없더니 얼마 후 좋은 식당에 초대해서 저녁을 잘 사더래요.
연봉은 끝내 모른 채 밥만 얻어먹었대요."

 

"반대로 돈 있는 부모 중에는 유산을 미끼로 못된 황제같이 구는 사람도 많죠.
 자식들 위에 군림하면서 효도 경쟁을 시키고, 아들에게 줄 듯 딸에게 줄 듯 변덕을 부리고,
그러다 부모 자식간의 정마저 다 잃는 사람이 있어요.
자식들은 부모가 가진 재산 때문에 꾹 참지만 속으로는 혐오감이 북받치겠죠."

 

"돈이 많지 않은 부모도 나름대로 머리를 쓴대요.
한 아버지는 자식들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 놓고 가끔 내보이곤 했는데,
돌아가신 후에 보니 전 재산을 가장 착한 자식에게 남겼고,
다른 자식들 통장에는 과자값 정도만 들어 있더래요."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와 살면서 손자들을 키워주던 할머니가
어느날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어린 손자가 다쳤대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온 며느리가 폭언을 퍼붓는데
놀란 할머니가 아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당연하다는 식이더래요.
충격을 받은 할머니는 곰곰 생각하다가
자기 명의로 돼 있는 아파트를 몰래 팔아서 종적을 감췄다는군요."

 

"통쾌하다. 졸지에 집을 잃은 아들 내외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남편이 먼저 가면 남은 재산은 반드시 부인 명의로 해야 한다니까."


● 자식들이여, 부모에게 지갑을 열어라

 

이런 저런 이야기들 중엔 그저 우스개도 있고 가슴아픈 실화도 있다.
아들 며느리의 폭언에 충격을 받고 집을 팔아서 종적을 감췄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옛날 같으면 어려웠을 그런 결단을 할만큼 요즘 노인들이 똑똑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섬뜩한 이야기는 극히 드문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장가간 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된다는 어머니들의 한탄은
일반적인 이야기다. 어머니들의 섭섭함이 비처럼 대지를 적시고 있다.

효도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지갑을 여는 것이다.
가난하든 부자이든 부모에게 드리는 돈은 마음을 담아 묵직해야 한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들이  지갑을 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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