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진목사 영상설교

2010.04.04 내가 주를 보았다

삼다7 2010. 4. 4. 18:10
























































 
나는 주를 보았다
신약의 말씀 / 요한복음 20:11-18 
 박종관님이 쓴 “대중가요 노랫말과 가수의 삶의 상관성 분석”이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이 논문은 가수들이 
부른 노래와 가수의 삶 사이에 상관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권혜경>이라는 가수는 26세에 “산장의 여인”
이라는 노래를 히트시켜 유명해졌습니다. 가사가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그녀는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다”, “세상에 버림받았다” “병들었다” “나 홀로 외롭게 살아간다”고 
노래하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2년 만에, 28세에 심장판막증, 후두암에 걸렸습니다. 
작사를 한 반야월 선생님을 찾아가서 왜 나에게 슬픈 노래를 주셨냐고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부르다가 30세에 현해탄에서 자살했습니다. 남인수는 “눈 감아드리오리”다를 
부르다가 41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배호는 “마지막 잎새”를 부르다가 30세에 신장염으로 사망했습
니다. 차중락은 “낙엽따라 가버린 사람”을 부르다가 29세에 뇌막염으로 사망했습니다. 내가 부르는 노래가 
나의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은 바젤대학교 의학심리학 교수입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정신분석
학을 공동 연구한 심리학의 대가입니다. 이 분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무의식을 의식화 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른다.” 가수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면 그 노랫말이 가수의 무의식 속에서 자리를 잡게 되고 이 무의식이 가수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어 이것이 가수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슬픔과 절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존경했던 예수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너무 슬펐습니다. 울면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누가 시신을 유기했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절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좌절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슬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슬픔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절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좌절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원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무덤 안에 있던 천사가 마리아에게 물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주님의 시신이 없습니다.” 그녀는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부활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절망의 관점으로 무덤을 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몸을 뒤로 돌이켰습니다. 예수님이 서 계셨으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 사람을 동산
지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야”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선생님” 이라고 
불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시면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다같이 찬양
합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져서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에 가서 외쳤습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부활의 노래입니다. 희망의 노래입니다. 승리의 
노래입니다. 마리아의 슬픔과 절망의 노래가 희망과 승리의 노래로 바뀌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에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만난 마리아의 노래가 바뀌었습니다. 
희망의 노래로, 승리의 노래로, 사랑의 노래로, 행복의 노래로 바뀌었습니다.    
 영국의 시인 엘리옷(T.S Eliot)은 <제3자>라는 시를 썼습니다.
항상 당신 옆에서
걷고 있는
제3자는 누구요
세어보면 언제나 당신과 나 
둘뿐인데 
내가 이 하얀 길을 내다보면 
당신 옆엔 
언제나 
또 한사람이 갈색 망토를 휘감고 
소리 없이 걷고 있네
두건을 쓰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당신 곁에 서있는 
그 사람 
그 사람은 누구요? 
 항상 우리 옆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세어보면 나 하나인데, 아닙니다. 둘입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어디에 계십니까? 바로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나의 노래를 승리의 노래로 바꾸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승리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를 축복합니다.
   (2010년 4월 4일 중곡교회 부활주일 주일예배 설교)  

요한복음 20:11-18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
     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